욕실 묵상
2000

15장 분량의 글, A4 인쇄, 글: 양혜규, 김미순

작가 제공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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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해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잘 모르겠다. 생활이 불만족스럽거나, 아니면 그저 바빠서, 너무 다른 일로 점령되어 있어서 그렇게 하기를 회피했는지도 모른다. 이 경우 반드시 일기나 지속적인 글쓰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적인 어떤 글쓰기. 대부분의 기록된 형태는 이제까지 계획이나 메모, 일정 아니면 단편적인 생각 정도였다. 일기 쓰기는 일찍이 그만두었다. 나에게 글쓰기란 오히려 자기 통제와 계획과 관련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지 않은 데는 일종의 두려움이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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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나에게 생면부지의 땅이다. 독일에 대해 아는 거라곤 딸이나 친지들로부터 귀동냥한 뜬구름 잡는 식의 사전 지식이 전부일 뿐이다.
그동안 마창노련사 집필 작업으로 꼬박 4년을 보내고, 곧장 또다시 신문사 논설실장으로 1년여간 악전고투를 거듭하였다. 갑자기 자유의 몸이 된 탓인지는 몰라도 독일행을 앞둔 얼마 동안은 풍선처럼 부풀어 둥둥 떠다녔다. 제정신이 아닐 만큼 들떠 있었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이번만큼은 모처럼 찾아온 자유를 오로지 나를 위해 만끽하리라 단단히 작정한 것이다. 아무 계획도 준비하지 않은 채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은 상상만 해도 나를 설레게 했다. 모험에 찬 기대와 흥분을 안고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거의 만 하루 동안 지구의 반 바퀴를 돈 끝에 딸을 만났다. 꿈만 같았다. 새벽 여섯 시인데도 하늘은 환하게 밝았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바라본 독일의 첫인상은 참으로 기이했다. 마치 볼륨을 줄여놓은 화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속삭이듯 낮게 말하고 느릿느릿 움직였다. 뛰어다니거나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사회복지를 누리는 선진국 국민들은 모두가 저렇듯 교양 있고 안정되었나 보다. 한편 부럽기도 하고, 한편 잘못하다가 무식하고 교양 없다는 손가락질을 받을지 몰라 잔뜩 긴장이 되었다. 이런 불안은 얼마 안 가서 현실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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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의식적으로 기억을 저장하거나 재구성하고자 하는 최초의 시도인 것 같다. 과거에도 시도한 적은 있었으나 결코 체계적이지 않았다. 한 가지 일을 계속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되뇌어 잊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강렬했던 감정이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으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지금은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것 전부는 반복함으로써 기억하고자 했던 시도 자체뿐이다. 어쩐지 슬퍼진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나 자신에 관한 일인 것이다. 어떤 일을 일으키고, 잃어버리고, 붙잡고 싶지만 다시 실패하고, 그래서 자신에게 화가 나고 실망하고, 결국 나의 삶이 어떤 면에서는 무의미하다고 느끼기에 이른다. 누군가 말하길, 우리는 기억되기 위하여 살고 있고, 일각도 놓치지 않고 죽음으로 돌진하고 있을 뿐이며, 거기에 예외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해 산다. 적어도 그것은 삶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흥분되는 일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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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남의 집에서 묵어도 긴장되는 법이다. 하물며 이국 땅에서야 오죽할까. 더구나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이가 되고,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으니 겁에 질려 잔뜩 주눅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까지 딸 앞에서 세상 다 아는 척하던 엄마가 아니던가. 그런데 반대로 여기서는 오직 딸 하나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딸의 귀와 입을 통해서만 세상을 듣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어린애가 되었으니, 갑갑하고 미칠 노릇이다. 하루하루가 살얼음 밟듯 조심스러웠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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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엄마는 갑자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 뿐 아니라, 심지어 아이처럼 짐이 되고 있다는 점이 고통스럽다. 지금 엄마 뿐 아니라 나 역시, 서로에게 상냥하게 대하자고 부단히 결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엄마의 자존심을 다치고 싶지 않고, 그를 전면적으로 돌보는 것도 할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마치 갑자기 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아이가 생긴 것 같다. 엄마 눈 앞에 드러나는 각종 사소한 일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적어도 필요한 말의 두 배 이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아이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어, 모든 걸 우선 서로 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우리 사이에 서서히 형성되었고, 우리는 곧바로 이를 알아차렸다. 나로서는 꽤나 참기 어려웠고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더더욱 서로에게 상냥한 것으로 둔갑시킬 뿐이었다.
서로 점점 더 친절하고 상냥하려고 자신을 내몰수록 우리는 기실 감정적으로는 더욱 지칠 뿐이었다. 엄마는 불쌍한 딸에게 맛난 음식을 해주려고 여전히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엄마의 근본 생각은 적어도 집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부엌에서만큼은 좋은 엄마인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인 듯하다. 그리하여 점차 내 아파트는 작은 한국으로 변모해간다. 우선 나는 집 안에서 신발을 신지 못하게 됐다. 부엌은 완전히 엄마의 영역이 되어, 엄마가 다른 곳에 둔 많은 물건을 내가 제자리에서 찾을 수 없게 되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온 집안이 깨끗해졌지만 나는 불편했다. 때로는 엄마가 단지 다른 방식으로 정리를 한 것이 견딜 수 없어서 싸우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결국 이를 피력한 것에 그저 죄책감만 들 뿐이었다. 지난 몇 년간 생긴 차이를 따라잡겠다는 나의 낭만적 생각에 비해 문제는 훨씬 심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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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할 때만은 세상이 조금 살맛 난다. 이런 게 목욕의 즐거움인지도 모른다. 가끔 낯선 곳에 가면 으레 그 동네 목욕탕에 들르곤 한다. 목욕탕 시설이 좋으면 그 동네 인상까지 덩달아 좋아질 때가 많다. 여기서도 그랬다. 한국식으로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면 피로가 단숨에 풀릴 터였다. 그러면 어깨 힘도 빠지고 기분도 다소 편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한국식 목욕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첫째는 때수건이 없어 시원하게 묵은 때를 벗기지 못했다. 두 번째는 물이 뻑뻑해서 씻어도 살결이 매끄럽지 않아 찝찝했다. 세 번째는 가스 온수기가 욕조 바로 위에 위치해, 더운 물을 틀 때마다 머리 위에서 펑 소리와 동시에 파란 불꽃이 번쩍이며 뜨거운 열을 내뿜었다. 이러니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직접 눈으로 가스 불꽃을 보니까 가스값이 많이 나올까 걱정도 됐다. 이런 악조건을 무릅쓰고, 어쨌든 아쉬운 대로 더운 물에 몸을 담갔다. 삭신이 녹으면서 시원하고 가뿐했다. 역시 목욕은 즐거운 휴식임이 틀림없다. 더운 물이 아까워 속옷과 양말도 빨았다. 그리고 욕조를 말끔하게 닦았다. 이왕이면 욕실 바닥도 물청소하고 싶었다. 목욕하는 도중에 물을 많이 흘려 욕실 바닥이 물 천지 였다. 이왕이면 본격적으로 대청소를 하리라, 나는 한국식 물청소를 상상하며 샤워기 물을 세게 틀어서 구석구석 먼지를 씻어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물이 안 빠져 점점 불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오랫동안 청소를 안 해서 배수구가 막힌 모양이니 배수구를 뚫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손으로 바닥을 샅샅이 더듬어 찾아보아도 배수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거실에 있는 딸에게 소리쳤다. “배수구가 막혔나 봐. 물이 안 빠진다. 배수구 어디 있냐?” 그러자 딸이 갑자기 소리치며 목욕탕으로 달려왔다. “세상에! 엄마! 물 뿌리면 안 돼. 여기 목욕탕은 배수구 없어. 큰일 났네. 아래층에 물 새면 어쩌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이미 바닥은 발등을 적실 만큼 물이 흥건했다. 한꺼번에 이 많은 물을 무슨 수로 빼지? 급한 대로 걸레로 고인 물을 짜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걸레 하나로는 어림도 없었다. 행주고 수건이고 가릴 겨를도 없이 손에 닥치는 대로 바닥에 던지고 물을 닦기 시작했다. 물을 짜서 버리고, 다시 물을 짜서 버리고 하기를 수 차례, 그제서야 점차 물이 줄어들었다. 수건과 행주가 걸레가 되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하긴 걸레가 따로 있나? 쓰다보면 행주나 수건이 걸레가 되는 거니까. (물론 독일에서는 행주와 수건 그리고 걸레가 처음부터 따로따로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덕분에 욕실 청소가 말끔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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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쩐지 우리의 재회가 결과적으로 문화적 충격의 측면에서 놀랍고 깊은 많은 통찰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바보 같고, 재미없고, 우스꽝스러운 사건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지루하고 짜증날 때도 있었다. 엄마가 무언가를 설명할 때마다 그게 내 기대를 벗어나는 것 같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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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린 물은 걸레로 닦고, 그 걸레는 다시 물로 빤다. 엎어치나 메치나 한가지다. 인생도 그와 같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기후와 풍토, 그리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함과 동시에 인간성이라는 보편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것’에 열광하거나 충격을 받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같은 것’을 확인하면서 위안을 얻는 것이 여행이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다는 걸 확인하기 위한 거라면 굳이 긴 여행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것’을 모르면 ‘같은 것’을 모르는 법이다. ‘다른 것’은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같은 것’은 큰 깨달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묘하게도 ‘같은 것’은 ‘다른 것’을 통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상적 기억들을 통해서만이 인간성이라는 보편성으로 갈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문화적 충돌이 내 앞에 닥칠지 알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영화의 결말을 다 알면서도 이 여행을 기다린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결말이 아니라 일상의 기억이라는 과정일지 모른다.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분명 나는 내 집이 가장 편하다는 걸 확인할 것이다.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내가 사는 시간적 공간적 위치를 모른다. 사람들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서야 자기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한 인간임을 확인하듯이 말이다. 산다는 게 조금은 쓸쓸하고 외롭듯이 여행도 그렇다. ‘다른 것’은 두렵지만 강한 자력이 있다. 반면 ‘같은 것’은 지루하지만 편안하다. 매일 매일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매일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오늘도 독일에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해가 뜨고 새가 노래하는 평화로운 시작이다. 하지만 언제 구름이 몰려와 폭풍우가 쏟아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일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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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고대 중국의 장자 莊子의 글을 떠올린다. 나비의 꿈 이야기. 꿈에서 깨고 그는 자신이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자기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내 삶에서 장자의 초현실적인 혼란을 점점 더 느끼게 된다. 특히 희로애락의 감정이 결부된 강렬한 경험일 경우. 그럴 때면 멀리 떠나고 싶어지거나 무력감에 빠진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 되거나, 내 삶이 실제인가 꿈인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 전문 수록:
Bejahung und Verneinung (Affirmation and Negation), Kolster, Galerie für junge Kunst, Frankfurt am Main, 2000 (Eng.)
Sonderfarben, Kommunale Galerie, Darmstadt, 2001(Eng.)
Metronome No. 7. The Bastard, ed. by Clémentine Deliss, London, Paris, Oslo, Copenhagen, Stockholm, 2001 (Eng.)
Melancholy is a Longing for the Absoluteness, ed. by Samuso and Hyunsilmunwha, Seoul, 2009 (Kor.)
Arrivals, Catalogue raisonné 1994 – 2011, ed. by Yilmaz Dziewior, exh. cat. Kunsthaus Bregenz, Berlin, 2011 (Eng.)
How to Write 4, ed. by Barbara Wien and Wilma Lukatsch, Wiens Verlag, Berlin, 2013 (Eng.)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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